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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정리중)

십일조의 근거 및 찬반 의견 정리


(개념)

- 위키백과 : 십일조 

- 엔하위키미러 : 십일조 



 




십일조란 무엇인가? 그것은 십일조를 바치는 대상의 통치권을 인정하는 행위로서 모세의 율법이 있기 훨씬 전부터 시행된 흔적이 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가 그것이다.(창 14:20)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당시 주변 여러 나라에서도 십일조 제도를 시행했다. 십일조는 왕의 백성으로서 당연한 의무였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표현이었다. 백성들이 매년 농사의 십분의 일을 중앙 성전에 가져오면, 다른 직업 없이 성전 일만을 담당하던 레위인들은 이 십일조로 생계를 유지했다. 


레위인만 십일조를 쓴 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십일조로 '회식'하기도 했다. (신 14:22~27) 또 3년마다 십일조를 거두어 성읍에 따로 모아 두었다가 레위인과 빈민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신 26:12) 십일조는 구약의 성전 제사 제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물적 토대였고, 당시 정치권력과 종교의 구분이 없던 신정 체제에서 일종의 세금 역할을 했다. 오늘날의 십일조가 구약의 그것이라면 현대 교회도 3년마다 목회자 사례비를 제외한 십일조 전액을 빈민 구제에 사용해야 마땅할 것이다. 


[출처]






 




[신명기 14장]


밭의 소출을 드리되, 제단이 너무 멀면 돈으로 바꿔서 그곳에서 제물을 사라. 십일조는 레위 사람과 가난한 자에게 나눠줘라. 


22 너는 해마다 밭에서 나는 네 씨의 모든 소출에서 진실하게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주} 네 [하나님] 앞에서 곧 그분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의 십일조를 먹고 또 네 소 떼와 양과 염소 떼의 처음 난 것을 먹으며 이로써 {주} 네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셨을 때에 {주} 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곳이 네게서 너무 멀거나 그 길이 네게 너무 길어 네가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손에 들고 {주} 네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으로 가서 


26 네 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즙이나 독주나 네 혼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고 거기서 {주} 네 [하나님] 앞에서 네가 먹고 너와 네 집안이 기뻐할지니라. 


27 네 성문 안에 있는 레위 사람은 너와 함께 나누는 몫이나 상속 재산이 없으니 너는 그를 저버리지 말지니라.  


28 너는 삼 년이 끝날 때에 바로 그 해에 거둔 네 소출의 모든 십일조를 가져다가 네 성문 안에 저축하여 


29 (너와 함께 나누는 몫이나 상속 재산이 없는) 레위 사람과 네 성문 안에 거하는 나그네와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가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할지니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네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서 네게 복을 주시리라. 






 




[말라기 3장 7~18절]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심지어 너희 조상들의 날들로부터 너희가 내 규례들을 버리고 떠나 그것들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돌아가리이까? 하였도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 것을 강도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주의 것을 강도질하였나이까? 하나니 너희가 십일조와 헌물에서 강도질하였느니라


너희가 저주로 저주를 받았나니 이는 너희 곧 이 온 민족이 내 것을 강도질하였기 때문이라. 

 

 

 

 

 

 

 

이 구절을 잘 해석하려면, 말라기 전체의 구조를 살펴야 한다. 문맥이 말하는 '십일조의 도둑질'은 제사장이 했던 어떤 특수한 범죄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본문은 느헤미야 시대의 특수한 상황과 연결되어 있는데, 내용을 살피면, 느헤미야가 도비야를 쫓아내고, 그 방에 있던 소제물과 유향과 그릇을 다시 들여놓았지만, 십일조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시의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를 자신의 것으로 횡령하여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던 것이다. 


[출처]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로 가져와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의 창들을 열고 받을 곳이 없도록 너희에게 복을 쏟아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먹어 삼키는 자를 꾸짖으리니 그가 너희 땅의 열매를 멸하지 못하리라. 또 너희 포도나무가 때가 이르기 전에 자기 열매를 밭에 떨어뜨리지 아니하리니 


너희가 심히 기쁜 땅이 되므로 모든 민족들이 너희를 복 받은 자라 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들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하여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이르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우리가 만군의 {주} 앞에서 그분의 규례를 지킨 것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걸은 것이 무슨 유익이 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를 행복하다 하고 참으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세워지며 참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들은 심지어 구출을 받았다, 하였느니라. 


그때에 {주}를 두려워한 자들이 서로 자주 말하매 {주}께서 귀를 기울여 그것을 들으시고 {주}를 두려워한 자들과 자신의 이름을 생각한 자들을 위하여 자기 앞에서 기념 책을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보석들을 만드는 그 날에 그들을 나의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자기의 친아들을 아끼는 것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로운 자와 사악한 자를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이 글의 원문의 해석에 이견 <예수님이 십일조를 지키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현실)

미국 교회도 십일조 강요하나요? 





(지지글)


 




민수기 18장 20~30절에는 하느님이 최초의 대자세장인 아론에게 십일조에 관하여 계시하는 부분이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직분 때문에 가나안 정복과정에서 토지를 분배받지 못하였으므로 레위 지파에게 이스라엘의 나머지 11지파에서 10%씩 소득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을 준다는 내용으로, 달리 소득이 없는 성직자들의 생계비라는 의미이다.


마르코 복음 13장에 보면 과부의 헌금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부자가 많은 돈을 헌금한 것보다 가난한 과부가 적은 돈을 헌금한 것을 예수가 훨씬 높이 평가했는데, 가난한 과부는 자신의 생활비 상당수를 떼어내어 바친 돈이므로 비록 적다할지라도 부자의 헌금보다 더 많은 셈이기 때문이다. 즉 버는 돈에서의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하나님에게 많은 것을 바치게 되는 셈이므로, 최소한 십일조는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복음서에서도 제자들을 보내면서 스스로 쓸 것을 가지지 말라 하면서 복음 받은 자들을 통해서 물질적인 필요를 채움받는 것을 말하였고(마태오 복음서 10장 9~11절[12]) 바울도 배우는 자가 가르치는 자에게 주라고 하였으며(갈라디아서 6장 6절[13], 디모데전서 5장 18절[14], 고린도전서 9장 9절~15절[15]) 실제로 받기도 하였다.(빌립보서 4장 16절[16]) (다만 사람들에게서 금전적 이득을 취한다는 오해를 피하기위해 일부러 안받기도 하였다. 고린도전서 9장 12절[17], 15절[18])


[출처]






- 말씀보존학회 

- 신약시대에 십일조를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 예수님은 십일조 자체를 거부하신 것이 아님 

“십일조 생활 철저할수록 빚없고 경제력 더 넉넉해”… 美기독인 신앙·헌금 조사 

십일조는 내는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재무 상황 '튼튼'  

십일조 헌금의 신학적 근거 

신약교회에서 십일조가 폐지됐는가?            

그리스도인의 헌금생활의 표준으로서의 십일조          

- 십일조는 율법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헌금생활의 표준으로서의 십일조      

- 그것으로 이제 나를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해 보시기 바랍니다.        








(십일조 반대글)


 




결론적으로 십일조가 성경적이기는 하지만 크리스천적인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강조하지 않으셨다. 1세기 크리스천들은 그것을 실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300년 동안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것을 행하지 않았다. 십일조는 8세기까지 크리스천들 사이에 널리 시행되지 않았다! 


신약성경에서의 헌금은 성도의 능력에 따라 드리는 것이었다. 크리스천들은 사도들이 교회들을 세우러 다니며 여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이외에 성도들을 돕기 위해 헌금했다.


십일조는 신약성경에 4번밖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들 중 크리스천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다시 말해 십일조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된 특별한 제사장들을 지원하기 위해 세금제도가 필요했던 구약 시대에 속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함께, "율법의 변화"가 생겼다. 옛 것은 폐지되었고 새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다 제사장이다(하나님의 집에서 자유롭게 제 기능을 발휘하는). 율법, 옛날 제사장 제도, 그리고 십일조는 모두 십자가에서 못박혔다. 이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성전의 휘장, 성전 세금, 그리고 특별한 제사장 제도가 없다. 친애하는 크리스천이여, 당신은 십일조의 굴레와 비성경적인 성직제도를 지원할 의무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출처 <십일조의 기원과 성직자 사례비>]






 






본래 구약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성전 제사를 맡은 레위인이나 고아, 과부 등과 함께 "나눠 먹는 것"이었으므로, 반드시 밭의 소출과 가축에서만 드려야 하는 것이다(레27:30, 신12:17, 14:23, 느13:5, 12).


 성전이 너무 먼 경우에도, 십일조 먹을수 있는것들을 일단 돈으로 바꾸어 성전에 가지고 와서, 다시 음식물로 바꾸어  십일조를 드리게 되었다(신14:24-26).


따라서, 십일조의 의무는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먹는 것>을 생산해내는 농민과 목축업자만 가능하고, 그 외의 직업인 상공업자, 세리, 어부와 목수, 기능공 등은 아예 그런 의무가 없었다. 당연히 예수님도,  어부였던 제자들도, 세리 마태도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한편, 성전을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때는 현금인 돈의 "성전세"였다. 이 성전세는 십일조와는 달리 온백성이 납부의무를 지고 있었으며, 그 액수도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출30:12-15).물론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이 성전세만큼은 예외는 아니었다(마17:27).


다시 말하자면 십일조는 구약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레위족 제사장이 성전 제사를 드릴때 유효했던 일종의 <음식물에 의한 사회보장제도>의 성격이 강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대교회때도 시행되지 않다가(당시는 <연보>개념이었고, 연보와 십일조는 전혀 다른 개념) 후에 교회가 제도화되면서 다시 시행된 제도이다.


주목할 점은  중세교회에서조차도, 4세기 무렵 십일조제도를 도입 후 무려 근 1,000년간 여전히 토지소출과 가축에만 십일조를 부과해 왔다는 점이다. 십일조는 명백히 <먹는 것>이 대상이었기 때문에 쉽게 돈까지 포함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3세기 와서 교회의 극심한 타락과 함께 비로소 십일조의 대상이, <먹는 것>을 포함한 <모든> 소득으로 확대되면서, 십일조가 엄청난 변질을 겪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잘못된 십일조는  종교적 병폐로 말미암아 결국은 세계의 거의 모든 기독교 국가들의 교회는 폐지 하였다(한국만 제외하고).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는,


단순히 십일조가 그러한 폐해를 넘어서, 이들 나라의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분명 십일조가 성경적인 기반위에 있지 않다는 교리적인 합의까지로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들 세계나라의 교단과 신학들이 한국교단과 한국신학보다 그리고 교리에서 뒤떨어 져서 이렇게 합의에 도달했겠느냐는 것이다.[세계 기독교 인구 20억명중 한국 기독교인은 불과 860만명이다<230분의1수준>(통계청 발표)].


그런데도 유독 한국교회에서만큼은 <십일조 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십일조제도가 <초교파적으로> 정착되어 있다는게 참으로 놀랍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단과 교단,교파와 교파 사이에 교리적으로 조금만 차이가 있어도 피투성이가 될정도로 싸워대도 어찌 된 일인지 이 십일조 많큼은 모두가 한 목소리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성경말씀이 바로 구약의 말라기 3장8절-10절 말씀이다. 

무릇 성경말씀은 그 말씀이 기록될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과, 그 말씀 전후의 유기적인 문맥관계를 고려해서 해석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고 특정 귀절들만을 떼어서  자신의 신앙의행동을 합리화 한다는것은 참으로 아쉽기 그지 없다.


 이곳의 말3:8-10 대표적 구절의 해석에 있어서 그 전체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 자세한 설명은 느혜미아서 13장을 보면 알수 있다. 말라기와 느혜미아는 동시대 인물이기 때문이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십일조 도둑은 그 백성들이 아니라 제사장들이었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성전으로 가지고 오면 제사장들은 그것들을 받아서 성전옆에 있는 성전 창고에 거둬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제사장 엘리야십과 도비야라는 사람이 서로 공모하여 성전창고 바로옆에 자기개인 창고를 만들어놓고 십일조및 백성들이 바친 각종 식량과 예물들을 자기가 만들어 놓은 개인창고로 빼돌림으로서 결국 그 성전에는 식량이 바닥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어 십일조의 혜택을 받아야 할 레위인은 정작 생계 문제 때문에 성전일을 버리고 자기들의 생계를 찾아 도망가는 일이 발생하였다.최초로 제사장에 의한 십일조 도적질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내용이 바로 십일조 도둑 사건인 것이다.내어야 할 십일조를 떼어먹어서 도둑이 아니라 제사장 엘리야쉽과 도비야가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를 훔쳐서 도둑사건이 된것이다.<말 3:8, 9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또한 개역한글판 말라기 3장 10절의 <쌓을>-(작은글씨로 표기)>이란 단어도 원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한국교회는 또 이 십일조 제도뿐만 아니라 교회(예배당)를 성전으로 부르고 있다. <00 성전>이니, <00 성전>이니 하는 명칭이 그렇거니와 심지어는 한 교회(성전^^)내에서도 <제1 예배당>, <제2예배당>하면 될것을, <예루살렘성전>이니, <가나안성전>이니, <솔로몬성전>이니 하고 부른다. 심지어는 목사의 설교단을 <제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스라엘 구약시대에도 성전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리고 그 성전마저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이미 완전히 사라졌음에도, 2,000년이 지난 현대의 한국에서는 우리가 쉽게 볼수 있는  이른바 <예배당의 성전化>가 이루어져 있다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사례비를 포함한 교회 인건비, 건물 유지비, 선교비, 불우이웃구제비 등 재정지출문제는 이렇게 성경적으로 근거가 취약해진 십일조를 강조함으로써 해결할게 아니라, 목회자들이 구체적인 재정필요사항들을 교인들에게 알려서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동참할 수 있는 <연보>개념을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라고 본다.


바로 사도 바울이 한 방법같이(고후 9장5)이다.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히 10 :8)


현재 세계적으로 십일조를 걷는 시행하는 교파들을 보면 먼저 우리에게 친숙한 미국 남부의 오순절교파가 있는데 어떤 오순절 교회에서는 예배중에 헌금바구니를 3번 돌리는 곳도 있다고 한다. 

 

다음,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국내엔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알려져 있죠), 안식일교,북미의 worldwide church of god(WCG) 등이 십일조 열성교파로 속하고 있는데 한번 유심히 살펴보면 뭔가 공통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십일조를 폐지한 나라들의 교회들도 재정적 어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다 하드래도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에>폐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신 이런 나라들에선 대부분 기부문화, 즉 교회 밖 문화인 parachurch운동이 크게 발달되어 있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대부분 해결한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십일조 문제는 교회의 재정적인 문제등..그런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 <성경적 근거의 문제>이다. 성경적으로도 근거가 없고(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세계 기독교추세와도 역행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아니, 확실한 성경적 근거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폐지론이 나올 수도 없었고, 전세계 국가들 역시 아직도 십일조를 시행하고 있을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자유함>을 주셨다. 

<십일조>는 분명히 개념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헌금에 <자유함>이 있고 그때는 십일조 이하든, 십이조, 아니 십삼조든 상관이 없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붙잡혀 온 여자를 용서해 주셨다. 당시 율법 하에서는 분명 간음한 남녀는 모두 돌로 쳐죽이게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율법을 어기신 건가? 아니다. 사랑과 용서로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다. 율법을 어긴게 아니라, 사랑으로 율법을 초월하신 것이다. 이게 바로 율법의 완성의 의미이다. 

 

안식일에도 아픈 사람이 있으면 사람 먼저 고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함이다. 

십일조 역시 마찬가지 이다. 현재의 십일조는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성도들을 혼란만 가중 시키고 있다. 마치 중세 암흑기에 성경을 일반 성도들은 볼수 없도록 라틴말로만 번역해놔서 일반 성도들은 이것이 죄인지 하나님의 뜻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고 해서 윌리암 틴델 같은 사람을 화형시키기도 하구. " 십일조 잘 하면 물질축복 만땅으로 받는다"  쌀로 튀밥을 뻥 튀기듯이 그래서는 안 될것이다.신약에 있어서 십일조는 분명히 성경적이지 아니다 것이다. 설교자인 목사는 설교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은사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목사는 성경을 볼때 "하나님 면전에서" 구속사적인 성경 전체의 흐름으로 설교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출처]






 




말라기 3장 8절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절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목사들이 교회에 십일조를 잘 내지않는 성도가 많으면, 주로 하는 설교인데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며, 그것을 도둑질 하는것은 저주받을 행위이므로, 십일조는 꼭 지켜야 하고 꼭 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저 구절은 일반 성도가 아닌, 목사에게 하는 소리이다. 보통 3장 8절과 9절만을 읽게 하는데, 앞뒤 문맥을 읽어 보면 목사가 십일조를 받았으면 한치의 흠도 없이 그 십일조의 모든 돈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고아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목사들 중 대부분이 저 구절에 걸린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다니, 저주를 받을지어다.


만약, 십일조를 받았다면 모든 목사들은 그 십일조를 한 푼도 사사로이 사용해서는 안되며, 십일조를 모두 기부하거나, 모두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데 사용하여야 한다. 


구약 시대 레위 지파 제사장들과 현 기독교 목사들은 동일 위치가 아니다. 목사는 제사장은 커녕 성직자조차 아니다. 그냥 평신도일 뿐. 이는 개신교의 근본정신인 만인사제주의를 무시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목사라는 직업 자체는 일종의 자원봉사로서 목회 활동 자체는 수익구조가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십일조 이외에 매주마다 걷는 헌금은 정작 따로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교단의 지원도 받는다. 또 목사 개인의 강연활동 등으로 투잡을 뛸 수도 있으며, 현대에서는 맞벌이가 일반적이기에 배우자나 직장이 있는 자녀 등 외적인 수입원이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렇기에 십일조로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더욱 설득력을 잃는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변명 중에 하나가 건축자금이다. 이는 예수의 가르침과 전혀 반대에 있는 주장이다. 예수는 그 호화로운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라고 선언했으며 통곡의 벽 빼고 그대로 되었다. 


십일조에 대한 비판은 '청빈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종교가 돈을 요구하고, 그 돈을 구제나 사회정의 구현 등에 쓰는 대신 목사의 사업자금 내지는 비자금으로 쓰이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강요하지 않는다느니, 강제는 아니고 안 내면 그만이라는 옹호론의 가장 큰 문제는 만약 십일조가 '안 낼수 없고, 내도록 강요하는 것'이라면 그때는 이런 도덕적 비판이나 받고 말 문제가 아니라, 응당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출처]






 




복음시대의 십일조는 감사로


(발췌)


"그러므로 십일조는 율법에 해당하는 법규이며 조항입니다. 십일조라는 단어의 뜻부터가 율법의 시행 명령에 해당하는 뜻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킹제임스 영어성경을 보겠습니다. [십일조가 Tithes〔taið〕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Tithe는 10분의 1 세금을 뜻합니다. 따라서 세금(십일조)은 강제성을 띠고 있는 세금을 율법화 시켜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며 이방인과 같이 생활하는 족속들에게 바치라는 율법적 명령입니다.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 에게냐 타인 에게냐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 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십일조에 대한 비밀을 말씀하시며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를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즉 히브리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백성은 세금을 받쳐야 하지만 아들은 받칠 필요가 없다 하시며 복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아들이 되었으니 바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십일조를 바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후 성장한 그리스도인은 자녀의 본분이기 때문에 이제는 의무나 강제성이 아닌 아버지께 대한 감사함으로 바쳐지는 감사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부 교역자들은 하기 좋은 말로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의 대화에서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눅11:42)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오늘날 교회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하라고 명령하신 것처럼 전하고 있으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이전이었으므로 율법의 완성이 이루어지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십일조에 대하여 그렇게 하신 말씀입니다. 한가지 예로 보건대 문둥병 자를 위하여 병을 고치시고 난 후 "너희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 는 것과 같습니다. 그 당시 문둥병은 무서운 중병으로 취급하였으니 설령 문둥병이 고침을 받았다 하더라도 제사장에게 보이고 제사장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가정으로 돌아 갈 수 있는 제도가 있을 때입니다 그래서 이 문둥이에 대한 말씀으로 보아도 당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이전까지는 율법에 관한 것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율법 시대와 복음 시대의 정확한 기점은 예수님 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그 시점이 율법과 복음 시대의 전환점인 것을 알아야 하며 성소 휘장이 갈라짐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지 못하는 교인들 가운데 대부분은 한달 수입 평균이 백만 원도 되지 못하는 약 칠십 만원 대입니다. 거기서 1/10을 십일조로 바치고 나면 육십 만원 조금 넘는 돈으로 한달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보다 더 철절히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면 생활고에서 벗어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하며 온전한 십일조를 강요합니다. 그러나 반면 재산이 많고 사업을 문어 발 식으로 벌여놓고 하는 갑부들은 자기 소득이 한 달에 얼마가 되는지 조차도 알 수 없는 부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몇 십 군데에서 소득이 발생하며 수시로 한 달에 여러 차례씩 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확한 계산을 할 수도 없고 되는대로 적당한 금액의 1/10을 십일조라고 이름지어 몇천 만원을 십일조로 바치면 그만이지 그것을 교회의 지도자들이 계산하고 따져서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니 제대로 계산하여 바치라고 하지 않습니다. 많은 액수를 이미 바쳤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 온전한 십일조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돈이 없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온전한 십일조를 강요하니 이게 성경적입니까?"


[출처]






 




"유대교의 경우,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함께 레위 지파로 이루어진 제사장 계급이 사라지면서, 성전 참배를 토라 학습으로 대체하고 종교적 지도자의 역할은 랍비들이 대신하였다. 이와 때를 함께하여 레위 지파 제사장들을 위한 십일조 제도도 같이 없어졌다. 성전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제사장도 필요없고, 제사장 계급이 없으니 제사장 계급의 생계 유지를 위해서 걷던 십일조 제도도 더 이상 존속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랍비들이나 시나고그(유대교 회당)에서는 십일조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레위 지파의 제사장'이 거두도록 되어 있는 십일조를 제사장이 아닌 다른 지파 사람들이 받는 것은 신의 법을 어기는 짓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다.


물론 레위 지파는 커녕 유대인조차도 아닌 개신교의 목사들이 십일조를 내라고 강요하는 것은 유대교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그 대신 랍비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별도의 직업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업 랍비는 이스라엘군의 군종 랍비(military rabbinate)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한국 기독교의 경우, 걷히는 헌금에 대해 지출하는 구제비는 3.8퍼센트 미만이기 때문에, 이들이 걷는 십일조는 사실상 성경상에서 말하는 십일조라고 하기가 어렵다. 착각하기 쉬운것이 십일조로 받은돈은 100% 구제에 사용되어야 한다. 이를 착복하고 사용하는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성경에 분명히 나와있다."


[출처]






 

 십일조는 다른 복음이다

 

 


"십일조는 모든 물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신앙고백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헌금에는 그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교회 재정 확보에 유익합니다만 그것은 맘몬 숭배일 수 있습니다. 

십일조를 완전하게 하신 내용을 실천하면 재정 확보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십일조가 교회의 좋은 전통이라고 하지만 아닙니다. 

다른 복음을 좇는 불순종일 뿐입니다." 


 

 

 

 

 

 (발췌)


유럽교회는 십일조를 하지 않습니다. 한국과 미국교회는 십일조를 합니다. 과연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틀렸을까요?


예수님은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완전한 율법이 생겼고 율법은 폐하여졌습니다(엡 2:14). 오


다른 복음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 곧 사도적 복음과 내용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복음을 뜻합니다. 어떤 유대인 교사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한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 사도는 천사라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선언하였습니다(갈 1:8-9). 율법의 한 조항인 십일조를 지키라는 것은 정확하게 여기에 부합됩니다.  


십일조는 교회 재정 확보에 유익합니다만 맘몬 숭배일 수 있습니다. 다른 복음을 좇는 불순종일 뿐입니다


교회는 십일조에 대한 바른 태도로 하나님 경외를 나타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선조들 곧 사람, 하나님의 말씀과 선조들의 잘못된 가르침 곧 장로들의 유전 사이에서 선택입니다. 


[출처]

 

 

 

 



 

 아직도 십일조가 성경적이라는 분들을 안타까워하며  - 박창진

 

 


"신약의 교회에게 아브라함의 십일조, 율법의 십일조, 

공생애 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일조를 요구하는 것은 죄악이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도 강하게 거부한 다른 복음이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신자는 그의 경고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말이다.  "


 

 

 

 

 

 (발췌)


-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비연속성


미국의 교회와는 달리 유럽의 교회는 십일조가 성경적이지 않다고 보고 십일조를 신자들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율법에서의 십일조는 의무였고 그 의무를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복을 부어주셨다. 구약 성경에서 십일조와 함께 제시된 물질적인 부유함의 복이나 심판 선언은 모두 문자적으로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도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책망하시면서 십일조를 언급하셨다(마 23:23). 


다만 누구에게 어떤 의도로 그렇게 말씀하셨는가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말씀이다. 율법 아래에 있으면서 율법의 한 조항인 십일조의 의무가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이다. 


중요한 점은 “율법의 십일조가 오늘날의 교회에게 유효한가?”라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율법을 완성하셨다. 옛 언약의 백성으로 새 언약의 백성이 된 유대인들에게는 율법 준수가 한정적으로 허용되었다. 율법이 중심인 옛 언약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일정 기간 동안 율법과 복음을 동시에 소유하고 율법과 복음을 동시에 누리게 된다. 


언약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던 이방인으로 새 언약의 백성이 된 경우에는 율법 준수가 아예 요구되지 않았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 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었다. 바울 사도는 다른 복음이라면서 그러한 주장을 하는 이는 천사라고 하더라도 저주를 받는다고 선언하였다(갈 1:8). 바울 사도는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이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는 담이었는데, 예수님께서 폐하셨다고 말하였다(엡 2:15).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옛 언약이 완전히 파기되면 율법을 지켜서는 안 되었다. 


십일조는 율법의 한 조항이다. 율법이 폐해질 때에 십일조도 폐해졌다. 십일조만 예외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율법을 도덕법, 시민법, 의식법으로 구분하고 도덕법은 오늘날 유효하고 나머지는 폐하여졌다는 개혁주의 가르침에 입각해서 생각할 때에도 십일조는 오늘날 유효하지 않다. 십일조는 도덕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약에서의 십일조는 바리새인이 기도할 때에 언급되고 예수님께서 언급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를 강조하셨다(마 23:23, 눅 11:42). 율법을 완성하시고 새 언약의 시대를 여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은 현재적으로 율법 아래 있으면서 그 율법을 준행하셨다. 


그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강조하심에 있어서 문맥은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을 책망하시는 상황이다. 율법이 폐하여지지 않은 상황에서 율법 준수의 의무를 가지고 있는 옛 언약의 백성에게 십일조를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교회는 율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복음 안으로만 부르심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율법이 요구되지 않았다. 율법을 요구하는 자체가 죄이다. 


 서신서 어디에도 십일조에 대한 가르침은 없다.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연보 요청도 십일조를 요구하기만 하면 되었을 것인데도 전혀 그런 내용이 없다.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기에 십일조를 하여야 한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셨다.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기에 하여야 한다고 하면 안식일을 준수하셨기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십일조와 안식일 준수 그리고 새벽 기도회 등을 함께 생각하면 어떤 원리의 일관성이 없다. 십일조는 예수님께서 지키셨고 지키라고 말씀하셨기에 유효하다고 한다. 안식일 준수는 예수님이 지키셨지만 지키라고 말씀하지는 않았기에 유효하지 않다고 한다. 새벽기도는 예수님이 행하셨고 행하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예수님을 본받는 것으로서 유효하다고 한다. 이는 교회가 임의로 취사선택하여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서 명백한 잘못이다.


십일조는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레위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돕기 위한 것이다. 소득의 십분의 일을 자신이 아닌 지체들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고 사도들은 완성된 십일조를 교회에게 가르쳤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음을 말하면서 십일조는 교회에게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안식일의 완성으로서 주일과 주일 성수가 옳은 것과 같이 십일조의 완성으로서 의의 열매를 맺기 위한 씨가 옳은 것이다. 


십일조의 정신을 말하면서 십일조의 실제적인 사용은 십일조 제정의 목적과 전혀 다르게 사용하는 것도 문제이다. 가난한 지체들과 불신자들을 위하여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십일조의 정신 그 자체이다. 그런데 십일조의 정신을 말하며 십일조를 하게하고서는 그와는 다르게 사용한다는 것은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율법을 폐하려고 오시지 않고 온전하게 하려 하신다는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여야 한다. 산상수훈은 십자가 이전에 주어진 말씀이다. 유대인들 가운데서 새 언약으로 부르신 사람들을 대상으로. 예수님은 탄생과 공생애는 율법을 온전히 준수하시는 것이었다. 율법으로 흠이 없게 된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율법을 완성하셨다.


십자가와 부활 이후에는 율법과 완성된 율법이 존재하게 된다. 율법과 완성된 율법은 분명히 다르다. 


신약의 교회에게 아브라함의 십일조, 율법의 십일조, 공생애 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일조를 요구하는 것은 죄악이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도 강하게 거부한 다른 복음이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신자는 그의 경고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말이다.  


박창진 5016park@paran.com



[출처

 

 

 

 


(논문/소고/원문해석)

- 구속사적 맥락에서 십일조는 폐기되었다.   

신학박사 오광만교수의 논문 – `십일조` “십일조가 신약 시대에는 폐지되었다”     

"바울은 이런 일을 할 때 넉넉하게 하라고 권하였지만(고후 9:6; 8:1-5), 그는 결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를 하라고 제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형제 사랑의 표현으로 드리는 연보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자기 수입에 맞추어 일정량의 돈을 따로 떼어 매주 돈을 거두는 것이 좋다”(私譯)고 권하였지 정확한 비율을 제시하지 않았다(고전 16:1, 2).76)"

"2008년 2월 19일 예장 합동신학대학원 박사학위1호이신 분께서 십일조의 부당함을 논문으로 쓰신 것은 대단합니다."

변질된 십일조의 역사 

예수님이 십일조를 지키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 누가복음 11:42 원문 해석 

- 마태복음 23:23 원문 해석 


(정리 중)


- 십일조 논쟁 (1)           

- 십일조 논쟁 (2)           

- 십일조 논쟁 (3)           

- 십일조 논쟁 (4)           

- 십일조 논쟁 (5)           

- 십일조 논쟁 (6)           


-  차라리 십일조를 없애자

- 한국 교회의 변절과 십일조 강요 '율법적 십일조'는 사도들이 전한 바 없는 '다른 복음' 

십자가 대신 십일조를 지고 가는 교회 (댓글 논쟁)

십일조 강요로 무너지는 한국교회 

십일조와 헌금의 의미와 사용에 대한 소고 

- 예수 부활 이후 신약에 '십일조'가 없는 이유        

- 유대인들은 왜 십일조를 안 하는가? 

십일조라는게 외국교회에도 있나요? 

전 세계 개신교 가운데 십일조 내는 나라는 유일하게 한국?” 

부흥사들이 말하지 않는 록펠러의 비밀 

- <십일조는 없다>, 조성기 교수 

- 한국 교회를 망친 십일조 

- 십일조의 성경적 근거  

십일조가 과연 의로운 일인가?

교회에 십일조 내지 마라!
십일조, 아직도 하십니까?
십일조 꼭 내야 하나
십일조로 욕망의 꿈을 채우는 목사와 교인들.
왜 십일조밖에 하지 않는가?..
십일조를 도대체 왜 하십니까?...
십일조, 꼭 해야 하나?
한국교회 십일조의 비밀





* 영업이익도 아니고 매출의 십분지일을 내라니 돈을 벌어본 일이 있긴 한 건가?













(십일조, 헌금과 관련한 성경적 근거)
- 십일조는 원래 구약의 개념
- 십일조는 율법상의 요구
- 모든 이스라엘 민족들은 각자가 벌어들인 모든 소유 중에 10%를 성전에 바칠 것이 요구되었음(레위기 27:30; 민수기 18:26; 신명기 14:24; 고린도후서 31:5). 
- 신약에서는 그렇게 율법적인 십일조 제도를 명령하거나 권하지는 않음. 
- 바울은 신자들이 자신 소득의 일부분을 구별해서 교회를 도우라고 함(고린도전서 16:1-2).
- 신약성경은 몇 퍼센트의 수입을 따로 떼어놓으라고 언급한 곳은 전혀 없고 “얻은 대로 저축하라” 함(고린도전서 16:2).
- 기독교인들은 각자 십일조를 해야 하는지 또 한다면 어느 정도를 나누어야 할지 지혜를 구하고 기도해야(약1:5). 
-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린도후서 9:7).
-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마23:23, 눅11:42)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히7:6)

(구약을 신약에 적용해서는 안됨)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고후3:12-14)라고 하였으니 율법은 곧 얼굴에 쓴 수건과 같으며 이 수건은 없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없어져야 할 수건이 아직도 덮여 있어 성경을 바로 보지 못하고 구약시대에 합당한 내용으로 이해하고 가르치며 무턱대고 강요하니 아무 것도 모르는 신도들은 하라는 대로 따라가기 바쁘고 성경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도 별 할 말없이 순종하는.. [출처]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찬성 근거)
- 사역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참고]
- 교회 운영 관련 비용 분담[참고]
-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눅11:42)
모세를 통하여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했음에 비추어 십일조를 구약의 율법의 잔재라고만 볼 수 없음.

(반대 근거)
- 구약시대 이스라엘사회에서는 십일조가 일종의 조세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국민이 국가에 대하여 세금을 내듯이 레위지파를 제외한 유대11지파들은 소득의 10%를 이스라엘 사회에 바쳤습니다. 오늘날은 국가와 교회가 엄격히 구별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고 성도는 국가에 대하여 소득의 10%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데(조세부담율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도 이와 별도로 교회에 소득의 10%를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성서의 근거가 궁금합니다.(출처)












민수기 18 : 21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민수기 18 : 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준 고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민수기 18 : 26 
너는 레위인에게 고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취하여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민수기 18 : 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신명기 12 : 6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보기] [더보기] 

레위기 27 : 30 
땅의 모든 십일조 곧 땅의 씨나 나무 열매의 십일조는 {주}의 것이니 그것은 {주}께 거룩하니라.

레위기 27 : 31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의 십일조 중에서 조금이라도 무르려면 그는 거기에 그것의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레위기 27 : 32 
소 떼나 양과 염소 떼의 십일조에 관하여는 어떤 것이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든지 열째 것이 {주}께 거룩한 것이 되리니

민수기 18 : 24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십일조 곧 그들이 {주}께 거제 헌물로 드리는 것을 내가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 상속하게 하였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상속 재산을 갖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민수기 18 : 26 
레위 사람들에게 이같이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취해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로부터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그것의 거제 헌물로 {주}를 위하여 드릴지니라.

민수기 18 : 28 
이와 같이 너희는 또한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너희가 받는 너희의 모든 십일조에서 {주}께 거제 헌물을 드리고 그중에서 {주}의 거제 헌물을 제사장 아론에게 주되

신명기 12 : 6 
너희의 번제 헌물과 너희의 희생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 헌물과 너희의 서원 헌물과 너희의 자원 헌물과 너희 소 떼와 양과 염소 떼의 처음 낳은 것들을 거기로 가져가고

신명기 12 : 11 
{주} 너희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거기로 가되 곧 너희의 번제 헌물과 너희의 희생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 헌물과 너희가 {주}께 서원하는 최상의 모든 서원 헌물을 가지고 가서

신명기 12 : 17 
¶ 너는 네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 떼와 양과 염소 떼의 처음 낳은 것과 네가 서원하는 서원 헌물과 네 자원 헌물과 네 손의 거제 헌물을 네 성문 안에서 먹지 말고

신명기 14 : 22 
너는 해마다 밭에서 나는 네 씨의 모든 소출에서 진실하게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신명기 14 : 23 
{주} 네 [하나님] 앞에서 곧 그분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의 십일조를 먹고 또 네 소 떼와 양과 염소 떼의 처음 난 것을 먹으며 이로써 {주} 네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신명기 14 : 28 
¶ 너는 삼 년이 끝날 때에 바로 그 해에 거둔 네 소출의 모든 십일조를 가져다가 네 성문 안에 저축하여

신명기 26 : 12 
¶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너는 네 소출의 모든 십일조 드리기를 마치고 그것을 레위 사람과 나그네와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에게 주어 그들이 네 성문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역대하 31 : 5 
¶ 그 명령이 밖으로 나가매 곧바로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출의 첫 열매를 풍성히 가져왔고 또 그들이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더라.

역대하 31 : 6 
유다의 도시들에 거하던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들에 관한 한 그들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주} 자기들의 [하나님]께 거룩히 구분하여 드린 거룩한 것들의 십일조를 가져와 그것들을 무더기로 쌓았는데

역대하 31 : 12 
신실하게 헌물과 십일조와 봉헌한 물건들을 가져왔더라. 레위 사람 고노냐는 그것들을 맡아 관리하는 자가 되고 그의 동생 시므이는 그 다음이 되며

느헤미아 10 : 37 
또 우리의 반죽의 첫 열매와 우리의 헌물과 온갖 종류의 나무의 열매와 포도즙과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집의 방들에 두며 또 우리 땅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그 레위 사람들이 우리의 경작지가 있는 모든 도시에서 십일조를 받게 하려 함이더라.

느헤미아 10 : 38 
레위 사람들이 십일조를 취할 때에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이 레위 사람들과 함께 있을 것이요, 레위 사람들은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우리 [하나님]의 집의 방들로 가져다가 보고 집에 둘지니

느헤미아 12 : 44 
¶ 그때에 내가 몇 사람을 임명하여 재물과 헌물과 첫 열매와 십일조를 둘 방들을 관리하게 하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위해 율법이 정해 준 몫을 도시들의 밭에서 거두어 그 방들에 두게 하였으니 이는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인하여 유다가 기뻐하였기 때문이더라.

느헤미아 13 : 5 
그를 위해 큰 방 하나를 예비하였는데 그 방은 예전에 그들이 음식 헌물과 유향과 기구들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주도록 명령한 곡식과 새 포도즙과 기름의 십일조와 또 제사장들의 헌물을 두던 곳이더라.

느헤미아 13 : 12 
그때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즙과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보고에 두므로

아모스 4 : 4 
¶ 벧엘에 가서 죄를 짓고 길갈에서 범법을 크게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물을, 삼 년 뒤에 너희 십일조를 가져오고

말라기 3 : 8 
¶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 것을 강도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주의 것을 강도질하였나이까? 하나니 너희가 십일조와 헌물에서 강도질하였느니라.

말라기 3 : 10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로 가져와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의 창들을 열고 받을 곳이 없도록 너희에게 복을 쏟아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마태복음 23 : 2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판단의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도다.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누가복음 11 : 42 
그러나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온갖 종류의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판단의 공의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넘어가는도다.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누가복음 18 : 12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히브리서 7 : 5 
진실로 레위의 아들들 중에서 제사장 직의 직무를 받는 자들은 자기 형제들인 그 백성이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따라 그들에게서 십일조를 취하라는 명령을 받으나

히브리서 7 : 8 
또 여기서는 죽는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으나 저기서는 살아 있다고 증언을 얻은 이가 받느니라.

히브리서 7 : 9 
또 나는 십일조를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 안에서 십일조를 바쳤다고 말할 수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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